K리그에서 제주유나이티드는 가장 독특한 정체성과 운영철학을 지닌 구단 중 하나다. 수도권을 연고로 시작해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뿌리를 내렸고, SK그룹의 후원을 기반으로 ‘기업과 지역이 결합된 성공적 축구모델’을 꾸준히 실험해왔다. 화려한 전성기부터 승강의 굴곡, 유스 육성과 팬문화, 현대적 브랜딩 시도까지. 제주유나이티드는 단지 팀 이상의 의미를 가진 K리그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K리그 팀 역사 시리즈’ 6탄에서는 서울, 부천, 제주라는 3도시를 아우른 이 팀의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변천사와 더불어, 오늘날 제주가 왜 주목받는 클럽인지를 짚어본다.
부천SK 시절의 성장과 갈등 (1982~2005)
제주유나이티드의 출발점은 서울 연고의 ‘유공 코끼리 축구단’이었다. 유공(현 SK에너지)은 1982년 프로축구 창단에 참여해 1983년부터 정식 리그에 출전했다. 당시 서울을 기반으로 출범했지만 K리그 정책과 연고지 조정 등에 따라 연고가 수차례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 ‘유공’이라는 기업명을 브랜드와 일치시키기 위해 팀명을 ‘부천 SK’로 변경하고 경기도 부천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된다. 부천 SK 시절은 K리그 초창기부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전력 보강과 유소년 시스템 정비가 이뤄졌으며, 실제로 1994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SK와 부천시는 항상 온전한 협력 관계에 있지 못했고, 홈 관중 저조, 지역사회 반감, 연고에 대한 불안정성이 팀을 둘러싼 지속적인 이슈로 부각됐다. 결국 SK는 팀의 생존과 장기적 브랜딩을 위해 새로운 연고지를 찾기 시작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훗날 ‘연고 이전 논란’의 불씨가 된다. 2005년, 구단은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를 이전하며 ‘제주유나이티드 FC’로 새롭게 출범하게 된다. 부천 지역 팬들의 극심한 반발 속에 이루어진 이 연고 이전은 K리그 역사상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현재의 FC안양의 창단 배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제주 정착과 오렌지 군단의 반전 서사(2006~2019)
제주로의 연고 이전 이후, 제주유나이티드는 본격적으로 ‘제주의 팀’으로 자리잡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홈구장으로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하며, 색상도 오렌지로 변경해 ‘밝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SK에너지의 지속적인 후원 하에 유소년 시스템도 정비됐고, 지역밀착형 마케팅과 브랜딩 활동이 강화되었다. 팀의 전력은 초기 몇 년간 부침을 겪었으나, 꾸준한 육성과 해외파 영입을 통해 서서히 상위권 팀으로 거듭난다. 특히 2010시즌에는 박경훈 감독의 지도 아래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크호스’를 넘어 명문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당시 산토스, 나드손, 김은중, 오승범 등이 이끄는 공격진은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고, 빠르고 공격적인 스타일은 많은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후에도 제주유나이티드는 2016~2017시즌 연속 상위권을 유지하며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고, 당시 이동수, 권순형, 이창민, 윤빛가람, 정운 등 국내파와 외국인 용병 간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홈 경기의 관중 문화와 응원 분위기는 타 팀과 차별화된 ‘제주만의 색’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오렌지 군단'이라는 상징이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9시즌 극심한 부진 끝에 K리그1 최하위를 기록하며 창단 후 처음으로 K리그2로 강등되는 쓰라린 결과를 맞게 된다. 이는 제주 구단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순간 중 하나였다.
K리그2 강등과 부활, 2020년대의 새로운 도전 (2020~현재)
강등 이후 제주유나이티드는 과감한 구조개혁에 돌입한다. 남기일 감독을 선임하며 전술적 체계화를 도모했고, 유스 출신 선수들의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그 결과 2020시즌 K리그2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하며 1년 만에 K리그1 복귀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이창민, 안현범, 주민규, 조성준 등이 맹활약하며 팀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제주다운 축구’가 다시금 팬들 앞에 선보여지게 되었다. 특히 주민규는 제주 소속으로 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기 제주유나이티드는 기존의 'SK 계열 안정 운영'에 더해, 팬 커뮤니케이션 확대, 지역 연계 프로그램, 디지털 콘텐츠 강화 등 구단의 현대화를 본격 추진했다. 유니폼 디자인 혁신, 오렌지 브랜드 마케팅, SNS 활동 등은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고, 실제로 2022~2023시즌 동안 제주월드컵경기장의 관중 수도 점차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2023시즌 이후, 주민규의 이적(→울산→대전)과 함께 득점력 약화 문제가 대두되며 제주도 또다시 리빌딩의 과제 앞에 서게 된다. 하지만 유소년 출신을 중심으로 중장기 전력을 구축하는 전략은 흔들림 없이 이어지고 있다. 2025시즌 현재 제주는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ACL 진출권 경쟁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클럽은 지속적으로 외국인 자원 보강과 함께 지역 밀착 마케팅을 통해 ‘팬과 함께 진화하는 구단’이라는 방향성을 강화하고 있다.
결론
제주유나이티드는 서울, 부천, 제주라는 다채로운 연고 역사 속에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만든 팀이다. SK라는 대기업 후원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오면서도, 승격과 강등, 리빌딩과 도약이라는 다양한 국면을 경험하며 단단해졌다. 오렌지 유니폼, 강한 활동량, 지역과 함께하는 운영 철학은 K리그 전체에서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며, 현재도 중장기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상위권을 위협하고 있다. 제주라는 지리적 한계를 오히려 브랜드로 승화시킨 이 팀은 앞으로도 한국 축구가 지향할 수 있는 ‘지속가능형 구단’ 모델의 표본이 될 것이다. 다음 K리그 팀 역사 시리즈는 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제주처럼, K리그는 지금도 진화 중이다.